해마다 7월이 되면 고교시절에 배웠던 한 편의 시가 생각이 난다.
바로 이육사의 '청포도'라는 시다. 이 시는 1939년 <문장>지에 발표된 시로, 얼핏 보면 평화롭고 아름다운 시골 풍경을 노래한 서정시처럼 보이지만 시인의 고된 삶과 일제강점기 말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대입해 보면 매우 강렬한 독립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

실제로 이육사(본명 이원록)는 시를 쓰는 예술가이기 전에 행동으로 저항했던 의열단 출신의 독립운동가였다. 일본 제국주의에 가장 적극적이고 치열하게 맞섰던 독립운동 단체의 행동대원이었다.
육사(陸史)라는 필명은 그가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과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 그의 수인번호(죄수번호)가 264번이었던 데서 유래했다. 이는 평생 역사를 기록하겠다는 의지와 일제에 대한 저항심을 이름에 새긴 것이다.
그는 평생동안 무려 17차례나 감옥살이를 겪었다. 모진 고문으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변절하지 않았고 광복을 불과 1년 앞둔 1944년 1월 16일, 39세의 이른 나이로 베이징의 일본 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한다.
당대의 수많은 문인들이 일제의 압박이나 유혹에 못 이겨 친일파로 변절하고 학병 권유 글을 쓸 때 이육사는 윤동주 시인과 더불어 끝까지 지조를 지키며 단 한 편의 친일 작품도 남기지 않은 청정한 시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2026년에 맞이하는 7월, 광복절을 한달여 앞두고
30대 이육사가 간절하게 독립을 염원한 시 <청포도> 를 만나봅니다.

청포도(靑葡萄)
- 이육사 -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葡)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엔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청포도는 민족의 희망과 결실이다. 주저리주저리 열리는 청포도는 우리 민족이 맞이할 풍요로운 미래와 희망, 그리고 독립을 상징한다.
푸른 바다와 흰 돛단배는 광복의 공간으로 푸른색과 흰색의 선명한 색채 대비를 통해 일제의 어두운 억압을 뚫고 찾아올 깨끗하고 평화로운 조국의 모습을 시각화했다.
내가 바라는 손님은 광복 또는 조국의 주권을 의미한다. 청포를 입고 찾아올 손님은 시인이 그토록 염원하던 조국의 광복과 독립된 조국을 찾아올 미래의 후손들을 뜻한다.
은쟁반과 하얀 모시 수건은 지극한 정성과 영접 준비를 뜻한다. 손님이 오면 은쟁반에 포도를 담고 하얀 모시 수건을 적시겠다는 것은 독립을 맞이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바치겠다는 순결한 준비와 환대의 태도를 보여준다. 손을 적셔도 좋다는 구절은 다가올 기쁨에 대한 설렘을 극대화한다.
죽는 날까지 이육사가 꿈꾸었던 것은 오직 하나 조국의 독립이었다.
그의 시 '청포도'는 암담한 일제강점기의 현실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언제가 반드시 찾아올 조국의 광복(손님)과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굳은 믿음과 기다림을 노래한 시다.
이육사는 '청포도'를 통해서 식민지 현실의 절망적 상황을 단순히 서술하거나 무력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강점으로 인해 파괴된 공동체와 이후 삶의 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는 미래지향적 태도를 문학적 형태로 제시하고자 했다.
그는 현실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폭로하기보다 청포도, 손님, 아이와 같은 상징적인 시어들을 활용하여 해방 이후의 세계를 미리 설계하고 선언하는 서정적·정치적 비전을 구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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