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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인문학에서 배우는 지혜

여인을 업고 강을 건너는 스님 이야기로 보는 본질 파악의 중요성

by 헤비브라이트 2023. 8. 14.

일을 하거나 일상생활을 하다보면 어려운 일에 봉착할 때가 간혹 있습니다. 일에는 지켜야 할 원칙과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일을 함에 있어 원칙을 깨뜨리자니 선례로 남을 수 있고, 자칫 잘못된 일로 지적되어 신분상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원칙은 지켜야 되겠고, 그렇다고 원칙을 고수하자니 당장 눈앞에 벌어진 급한 일을 해결할 수 없으니 참으로 난감한 순간을 접하게 되는 일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어느쪽이든 선택은 해야만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순간이 있습니다.
이럴땐 우린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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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스님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두 스님이 길을 걷고 있었다. 한 분은 노스님이었고 한 스님은 나이가 어린 젊은 스님이었다.
두 스님이 절에 돌아가는 길에 강(개천)이 하나 있었는데 그 강은 갑자기 내린 비로 물이 많이 불어나 있었다.
앞에 도착한 어떤 젊은 여인이 강을 건너지 못하고 강가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모습을 두 스님은 보았다.

이 여인을 도와주지 않으면 해가 지고 날이 새도 강을 건너지 못하고,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행색이었다.
이런 안타까움을 본 노스님이  "저한테 업히시지오, 제가 건너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젊은 스님이 화들짝 놀라면서 " 어떻게 불자가 여인을 업을수 있나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노스님은 그 여인을 업고 강을 건넜다. 강을 다 건넌 뒤 여인을 내려주고 다시 갈길을 가고 있는데 젊은 스님이 "어떻게 불자의 몸으로 불경스럽게 여자를 업을수 있습니까? 너무한 거 아닙니까? 하면서 걷는 내내 계속 노스님을 다그쳤다.
 
그 여인을 없었던 노스님은 참다 참다 한마디 합니다.
"스님 저는 아까 그 여인을 거기에 이제 내려주고 왔는데 스님은 계속 그 여인을 업고 있었군요!"
 
 
'원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자'와 그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볼 수 있는 자'의 단편을 보여주는 이야기인데 이 젊은 스님은 본질을 모르는 겁니다.
  
그 행동의 본질이 도와주기 위함인지 아니면 그 여인을 만지고 싶어서인지 그 본질을 모르는거고 원하는 것에 집중을 못하니까 자꾸만 원치 않은 것에 집중을 뺏겨버리는 겁니다.
 
우린 원칙과 순서를 깨뜨려서는 아니된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불자는 여인을 만져서는 아니된다는 것을 노스님이 알고 있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당장 앞에 닥친 상황을 진행하지 않고 해결하지 않으면 더 곤란한 상황이 생길수 있으니 그일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원칙이나 순서라는 본질을 깨뜨리는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불자로서 여인을 몸을 만지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원칙이나 순서에서 우린 유연해질 필요가 있고, 불자라도 여인을 업을 수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해서 지금의 상황을 더 나아지겠다는 것이 또 다른 원칙으로 세워졌다면,  밑바탕을 깔고 있는 그 본질이 무엇인가를 먼저 판단한다면 선택과 집중은 쉬어집니다
 
두루두루 모든 사람을 위한 일이라면, 그 일을 함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잠깐 그 원칙과 순서에서 조금 유연해졌다고 해서 누가 손가락질 할 것인가요?
그 어려움에 처한 여인을 업고 강을 건넜던 노스님을 누가 손가락질 했는가요?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이 손가락질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상황이 이미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자꾸만 탓을 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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